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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언어가 공존하는 글로벌 싱가포르 서점

by ttttmmmm 2025. 6. 16.

서점공간
글로벌 싱가포르 서점

오차드 로드를 걷다가 우연히 들어선 키노쿠니야 서점에서 처음 경험한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로 쓰인 책들이 한 공간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모습이 매우 신기하였습니다. 싱가포르라는 작은 도시국가가 만들어낸 독특한 다문화 서점 문화는 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특별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그리고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곳에서 서점은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가 만나는 교차점 역할을 합니다. 각기 다른 언어로 쓰인 아시아 문학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새로운 문학적 대화를 만들어내며, 독자들은 자신의 모국어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로 된 책들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됩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싱가포르만의 독특한 독서문화는 글로벌 시대 다문화 사회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 가지 언어가 공존하는 서점의 풍경

싱가포르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거리의 간판들이었습니다.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가 함께 적혀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데 서점에 들어가니 이런 다국어 환경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키노쿠니야 오차드점과 같은 대형서점에 들어가면 1층부터 여러 층에 걸쳐 언어별로 섹션이 나뉘어 있으며, 각각의 공간이 마치 다른 나라의 서점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영어 섹션에서는 미국이나 영국에서 출간된 최신 베스트셀러를 쉽게 찾을 수 있고, 중국어 섹션에서는 대만과 중국 본토의 다양한 문학작품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말레이어와 타밀어 섹션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문학작품들이 가득하였고, 말레이어로 쓰인 시집을 들춰보니 아름다운 표현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하였지만, 문자 자체가 주는 시각적 아름다움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런 언어들이 서로 섞여 있는 책들도 있다는 점입니다. 싱가포르 현지 작가들이 쓴 소설 중에는 한 문장은 영어로, 다음 문장은 중국어로, 또 다른 부분은 말레이어로 쓰인 작품도 있습니다. 이는 싱가포르 사람들의 일상 언어생활을 반영한 것입니다. 집에서는 중국어를, 학교에서는 영어를, 친구들과는 말레이어를 섞어 쓰는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서점 직원들도 대단합니다. 대부분 네 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 고객이 어떤 언어로 질문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응대합니다. 어떤 직원은 제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는 한국어로 간단한 인사까지 건네주었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며 진정한 다문화 사회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영어책과 중국어책을 함께 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는 타밀어 신문을 읽으면서 동시에 영어로 된 경제지를 펼쳐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풍경은 싱가포르 서점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았습니다.

번역문학의 흥미로운 싱가포르 서점

싱가포르 서점들이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아시아 전역의 문학작품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정학적으로 동남아시아의 중심에 위치하고, 역사적으로도 다양한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이었기 때문에 아시아 문학의 허브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에픽 북스 같은 독립서점에 가보면 인도네시아의 프라모디아 안타 투르, 말레이시아의 탄 트완 엥, 태국의 차트 코프차크리, 필리핀의 호세 리살 등의 작품이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진열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작품들을 읽다 보면 아시아 각국이 겪어온 비슷한 역사적 경험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식민지배, 독립투쟁,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겪은 혼란과 성장통이 각각 다른 언어와 문화적 배경으로 표현되지만, 그 근본적인 감정은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또한 현대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집단과 개인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으며,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싱가포르 서점들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번역문학의 다양성이었습니다. 같은 작품이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로 각각 번역되어 있는 경우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아시아 언어 간의 번역이 매우 활발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중국어 소설이 말레이어로, 타밀어 시집이 영어로 번역되는 등, 서구 문학 중심의 번역 패턴을 넘어선 새로운 흐름이 존재하였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싱가포르 독자들은 국제적인 감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언어와 문화의 문학작품을 접하면서 자라기에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층 넓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어린이 섹션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책들도 여러 언어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한 아이는 영어 그림책을, 다른 아이는 중국어 동화책을, 또 다른 아이는 말레이어 만화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매우 자연스러웠습니다. 부모들도 아이에게 여러 언어로 된 책을 사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영어와 중국어로 각각 나온 책 두 권을 함께 구입하여 "집에서는 중국어로 읽고, 학교에서는 영어로 읽힐 거예요"라고 말씀하신 어머니도 계셨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다국어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며, 더 나아가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포용력도 함께 기르게 될 것입니다.

글로벌 시대의 새로운 서점 모델

싱가포르의 다국어 서점 문화를 보며, 미래의 서점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세계가 점점 더 연결되고 있는 지금, 단일 언어와 문화에만 머무를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싱가포르의 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단순히 외국어 서적을 진열하는 것을 넘어,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번역문학의 중요성도 새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번역서가 많을수록 문화 간의 이해가 깊어지고, 이는 더 포용적이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 서점에서의 경험은 쇼핑이나 관광을 넘어서 진정한 문화 체험이었습니다.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접하며,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한층 넓어졌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다문화 서점을 더 많이 경험하고, 우리나라 서점들도 점점 더 국제적이고 다문화적인 공간으로 발전하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