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태국인의 무더위속 열정이 담긴 헌책방

by ttttmmmm 2025. 6. 17.

책방의 사람들
태국의 헌책방

뜨거운 방콕의 주말 오후, 세계 최대 규모의 주말시장 차트차우를 걷다 보면 온갖 물건들 사이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은 헌책방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지인들에게는 '잘못짜억'이라고 불리는 이 차투착 위켄드 마켓의 한 켠에서, 낡은 천막 아래 가지런히 정리된 태국어 책들과 영어 소설책들이 소박하게 진열되어 있습니다. 에어컨도 없는 작은 가판대에서 40도를 웃도는 무더위를 견디며 책을 팔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이곳은 중고서점을 넘어 태국 서민들의 삶과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살아있는 도서관 같은 곳입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시장 한복판에서 만나는 이 작은 책방들은 태국 사람들의 독서 문화와 지식에 대한 갈망을 보여주는 소중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1. 책방에 담긴 태국인의 삶과 열정

방콕에 처음 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차트차우 시장의 규모였습니다. 정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으며, 옷, 신발, 액세서리부터 애완동물, 식물, 음식까지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예상치 못한 광경을 마주했습니다. 바로 헌책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지만, 자세히 보니 곳곳에 여러 개의 책방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천막이나 간이 테이블 위에 책을 쌓아놓고 파는 형태였으며, 정말 소박한 모습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 할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책방이었습니다.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부채질을 하시며 책을 정리하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태국어 책들은 빼곡히 쌓여 있었고, 낡은 표지나 누렇게 변색된 페이지가 많은 오래된 책들이었습니다. 단순히 중고책을 파는 곳인 줄 알았지만, 현지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이 참고서나 소설을 고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곳이 그저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어 소설책들도 판매되고 있었으며, 가격은 우리나라 돈으로 500원에서 1,000원 사이로 매우 저렴했습니다. 헌책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지식을 얻고 싶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통로였습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부담이 있는 학생들에게는 더욱 소중한 공간이었습니다.

2. 무더위 속 책을 지키는 사람들

방콕의 4월 날씨는 40도를 웃도는 살인적인 더위입니다. 그런데도 차트차우 시장의 책방 주인들은 간이 천막 아래에서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선풍기도 없이 손부채 하나로 더위를 견디며, 책을 손님에게 소개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었습니다. 한 할머니께서는 태국어 소설책들을 깔끔히 정리해 놓고, 손님이 오면 책의 내용을 일일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영어가 서툰 저에게도 Good book, very interesting이라고 말씀하시며 책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또 다른 아저씨는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을 소개해주시며 "This is the best mystery writer"라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이분들은 책에 대한 애정이 깊었습니다. 이곳에서 책방 주인들은 단순히 판매자 이상의 역할을 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친절하게 영어로 설명해 주고, 계산기까지 꺼내 환율을 계산해 가며 책을 소개해주었습니다. 한 할아버지는 제가 고른 책을 정성스럽게 비닐봉지에 싸주시며 "Take care"라고 하시기도 했습니다. 책에 대한 자부심과 손님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습니다.

3. 문화 교류의 공간이 된 헌책방

차트차우 시장의 헌책방은 중고서점이 아닌, 태국 사람들의 문화와 지식에 대한 욕구가 드러나는 상징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직장인, 노년층까지 다양한 세대가 책을 사러 이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특히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들이 참고서를 고르는 모습이 자주 보였습니다. 책을 꼼꼼히 비교하고 상태를 확인하면서 진지하게 선택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어떤 대학생은 영어 문법책을 고르며 한참을 비교하더니 결국 두 권을 구매했습니다. 새 책을 살 여유는 없지만, 공부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보다 뜨거워 보였습니다. 책의 종류도 매우 다양했습니다. 태국 문학, 영어 원서, 시험 대비서, 불교 관련 서적, 요리책, 건강서, 만화책, 잡지 등 각양각색의 책들이 있었고, 특히 소설책과 펭귄 클래식 시리즈가 많이 보였습니다. 각 책에는 이전 주인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밑줄, 메모, 책갈피로 쓰인 영수증이나 버스표 등은 책을 더욱 소중하게 느끼게 해주는 요소였습니다. 심지어 이 헌책방들은 외국인 관광객과 현지인이 만나는 문화 교류의 장 역할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일본인 관광객은 태국어로 번역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구입하기도 했으며, 저 또한 기념 삼아 태국 요리책 한 권을 샀습니다. 책을 통해 태국의 언어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이 책을 사고파는 시장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책방 주인과 손님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세대 간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이 작은 공간은 말 그대로 시장 속 도서관이자, 태국 문화의 정수가 담긴 장소였습니다. 방콕을 여행하신다면 차트차우 시장의 헌책방들을 꼭 한번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관광 가이드북에는 나오지 않지만, 정말 특별하고 따뜻한 경험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